남미 광산지역의 비소 배출 문제 (칠레, 볼리비아)
비소는 자연에도 존재하지만, 채굴과 제련 같은 광산 활동을 통해 농도가 급격히 증가하며 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남미의 주요 광산지대인 칠레와 볼리비아에서는 구리, 은, 주석 채굴 과정에서 비소가 다량 배출되어 지역 주민의 건강과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남미 광산지역에서 발생하는 비소 오염 실태를 중심으로, 환경과 산업 사이에서 우리가 다시 질문해야 할 균형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광물 자원 부국, 그러나 ‘비소 리스크’에 노출된 칠레
칠레는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으로 알려져 있다. 북부 아타카마 사막 지역부터 중부 안데스 산맥에 이르기까지 광산이 수십 곳 넘게 분포해 있고, 이곳에서는 매년 수백만 톤에 달하는 구리가 채굴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따라오는 것이 바로 비소(As)다. 특히 칠레 북부는 지질적으로도 비소 농도가 높은 토양이 분포해 있어, 제련 과정에서 비소가 다량으로 배출되면 토양과 지하수에 쉽게 축적된다. 개인적으로 칠레의 광산 뉴스나 보고서를 접할 때마다 늘 뇌리에 남는 단어는 ‘산업은 발전했지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역 주민들의 말이다. 실제로 칠레 북부 칼라마(Calama) 지역에서는 어린이의 혈중 비소 수치가 WHO 기준치를 초과한 사례가 수차례 보고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피부병, 호흡기 질환, 심지어 암 발병률까지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이 비소 오염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소는 수십 년 동안 토양에 잔류할 수 있으며, 지하수를 통해 장기적으로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비소는 맛도 없고 냄새도 없어 물속에 섞이면 인지하기가 매우 어렵고, 이 때문에 피해는 오랫동안 잠재된 채 쌓이게 된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는 반드시 상호배타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칠레는 이미 선진적인 광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환경 감시 시스템과 주민 보호 제도는 부족하다. 광산 운영 허가 시 비소 배출 허용치나 주민 이주 계획이 부실하게 설계되거나, 사후 관리가 허술한 경우도 많다. 나는 한국과 같은 기술 선진국이 이런 국가들과 협력해 비소 처리 기술이나 환경 모니터링 시스템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진정한 국제 협력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자원을 사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오염된 지역과 사람들의 삶을 함께 개선하는 모델이 이제는 필요하다.
볼리비아, 빈곤과 함께 물려받은 비소 오염
칠레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볼리비아 역시 대표적인 광물 자원 국가다. 은과 주석, 아연을 중심으로 한 광산업이 경제의 큰 축을 이루고 있으며, 대부분의 광산은 안데스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문제는 단순한 환경 오염을 넘어, ‘빈곤과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이다. 볼리비아 광산 지역에서는 아동과 여성까지 채굴 노동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고, 작업 현장에는 비소나 납, 카드뮴 등 중금속에 대한 보호 장비도 거의 없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국제 환경단체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서였는데, 당시 한 사진 속 소녀가 맨손으로 광석을 분류하고 있는 장면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단지 가난하기 때문에 독극물에 그대로 노출되는 현실. 비소는 그런 구조적 차별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볼리비아의 몇몇 폐광 지역에서는 비소 함량이 리터당 0.1mg을 초과한 지하수가 식수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WHO 기준치(0.01mg/L)의 10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며, 장기 노출 시 암, 피부질환, 신장 손상 등의 위험이 있다. 그런데도 이 지역 주민들은 정수 시스템 없이 이 물을 그대로 마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물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보다는 생계가 우선되는 현실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구조가 반복되는 걸 방치해서는 안 된다. 나는 볼리비아의 비소 오염 문제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정책과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본다. 국제 원조는 인프라 건설보다, 주민들에게 안전한 식수를 제공하는 것이 먼저고, 제련소에는 최소한의 정화시설이 의무화되어야 한다. 볼리비아 정부도 국제기구와 함께 비소 제거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자금과 기술 부족으로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술의 이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원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오염된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가 더 이상 독성 물질 속에서 자라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짜 기술의 역할 아닐까?
독성보다 오래 남는 것은 ‘책임’이다
비소는 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더 무서운 건 이를 방치한 사회의 무책임이다. 나는 남미 광산지역의 비소 문제를 보며, 자원 개발의 윤리와 책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개발의 속도보다, 삶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고려하는 산업 구조가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 되어야 한다.